본문 바로가기
오늘 하루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말 한마디로 천냥빚도 갚는다는데

by 카타리나39 2024. 10. 31.
반응형

결론은 같을 지언정 듣는 사람에게 말은 '아'다르고 '어'다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자신의 말하는 방법보다는 받아들이는 사람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누가 해도 전 상관없어요."

30년을 넘게 근무 한 직장이다. 내가 하는 일에서 실수 한번 없이 일을 했다. 누구나 인정하는 바다. 하지만 내가 하는 일이 전문적인 일은 아니니 그래, 누가와서 해도 비슷하게는 해낼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건 나만의 문제가 아니겠지. 어떤 회사에서든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가와서 대체해도 비슷한 역량을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회사는 맘에 들지 않는 사람을 다른 사람으로 대체하는데에 망설임이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도...그래도다.

적어도 그동안 고생했던 사람에게 하는 말이라면 그렇게 말하면 안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그래도 오래동안 고생하셨는데....."

"공짜로 일한건 아니잖아요. 그리고 회사 사정이 어려운데 어쩌겠어요."

회사가 어려워진 몇년전부터 장기근속자들부터 정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단도직입적으로 '오래 다니셨으니 관두시죠'라고는 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그만두는 그 시점에서 기준좋은 결말을 내게 하지는 않았다.

정년 퇴직을 앞둔 분이 계셨다. 회사 사정이 좋을땐 정년이 지나고도 촉탁직 계약을 맺어 1-2년 더 나닐수 있는 방법도 있었지만 사정이 나빠진 이후엔 그런 기회는 사라졌다. 그렇게 정년을 2개월 조금 넘게 남겨둔 시점에서 그분들에게 통보를 했다.

"두달은 급여 지급해 드릴테니까 이번달까지만 나오세요."

이게 속사정을 보면 이렇다. 촉탁직으로 채용할수가 없으니 두달 정도 여유롭게 급여 받으시면서 다른 직장 알아보세요!! 회사로서는 편의를 봐드리긴 위한 조치였다. 하지만 저 말을 들은 당사자는 기분 나빠했다.
쫓겨나는 기분이라고 했다. 그래도 자기는 오래다닌 직장이고 정년까지 다니게 해준 회사니까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었는데 갑자기 저런 통보를 받으니 쓸모없으니 얼른 나가라는 말로 들렸다고 한다. 전해들은 나도 그런 생각이 들었으니 당사자는 오죽했을까.

이상하게 이 회사는 그렇게 호의를 베풀면서 욕을 먹는 경우가 꽤 있다. 매번 그런식으로 하면 안좋을거라고 했지만 말하는 당사자들이 그걸 크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가 '누가 해도 상관없다'라는 말로 나에게 돌아왔다.
회사 사정이 어렵다. 그래서 새로운 사업으로 확장을 해보려고 한다. 그런 상황이니 그쪽으로 가서 지금 일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에 도전할 사람이 필요했다.
아무것도 없는 맨바닥에서 시작해야하니 사람들이 내키지 않는것은 어쩔수 없었다.  그래서 몇몇 사람을 신사업쪽으로 강제적으로 보내야했고, 가는 사람중엔 장기근속자가 해당될수 밖에 없었다. 이게 내가 저 얘기를 들은 이유다.

'누가 해도 전 상관없어요. 잘하기만 하면. 그러니까 여기 일은 인수인계하시고 새로운 걸 해보시죠.'

듣기 좋은 말일까?
나를 무시해서 이런말을 한건 아닐꺼라고 믿고 싶다. 좋은 뜻이었을것이다. 새로운 일에 도전해보자는. 하지만 이 말을 들어야했던 내 입장은 뭔가 쫓겨나는 기분이 들면서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일이 정말 별거 아닌게 되어버려 씁쓸하고, 허망해졌다. 이런 얘기가 나오기까지의 과정도 말도 안되는 일의 연속이라서 더 그런 기분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 이렇게 나를 무시한건 아닐꺼야라고 생각하는것도 스스로를 위한 핑계일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고생하시면서 일해준 덕분에 큰일 없이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 후배도 키워야 하니 이참에 물려주시고 또 새로운 일에 도전해 보시면 좋을거 같아요.'

어차피 인수인계하고 다른일을 해라!의 뜻은 같아도 지금까지 해온 나의 시간을 인정해주는 말을 한마디라도 했더라면 내 기분은 지금과 같지는 않았을거란 생각이 든다. 천냥빚을 갚을수 있는 그 작은 한마디를 하지 않아서 회사에 없던 정도 떨어지게 만드는 말을 했다는걸 당사자는 아마 평생 모를테고, 알아도 별로 개념치 않겠지.

나에게 회사는 나름 애정을 쏟았던 곳이었지만 회사에게 나는 그저 언제든 교체 가능한 사람이었을테니 말이다.

날씨가 좋은 날, 우울한 기분속에  그래도 여전히 나는 출근을 하는 직장인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