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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이야기/이미지난이야기

47.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

by 카타리나39 2010. 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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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와오의짧고놀라운삶
카테고리 소설 > 영미소설 > 영미소설일반
지은이 주노 디아스 (문학동네,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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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을 지키려 했으나 실패한 할아버지 아벨라르 그 순간 푸쿠는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무언가를 지키려고 하면 할수록 커져가는 그림자

"흥, 어디 잘먹고 잘사는지 두고보자"

이런 말또한 하나의 저주(푸쿠)다. 우리 일상은 그렇게 쉽게 저주에 노출되어 있다. 이런 사소한 말이 저주라면 나또한 누군가에게 그런 저주를 해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그 저주에 얽메여 불행해 지지는 않는다.

우리의 현재도 그러할 것이고, 그보다 더 오랜 시간속의 삶에서도 그러했을 것이다. 힘이 없어 대항할수 없는 삶은 과거나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삶에 내려진 저주일까?

아벨라르의 딸 벨리시아 그녀의 삶은 태어나면서부터 푸쿠안에 갖혀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죽을 고비를 넘기며 살다 결국 병에 걸렸다. 남편을 잃고 고생하며 아이를 키웠지만 그녀에게 남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벨리시아는 사랑의 모습을 딸에게 보여주지 못하고 만다. 무엇이 그녀를 그렇게 만들어버렸는지...삶에 대한 혹은 푸쿠에 대한 포기의 마음이 컸던 것일까?

우리나라 고생했던 어머니들이 보여줬던 자식에 대한 사랑과 삶에 대한 용기 그런걸 기대한게 잘못이였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모든 어머니는 용감하다 하지 않은가. 그래서 조금 더 용기있는 그녀의 삶을 기대했다.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느낌의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틀린 상황에서 오는 오해의 탓일까? ^^;;

뭐라고 하든 난 그녀가 사랑을 좀더 표현할수 있었다면...저주에 당당히 맞설수 있는 용기가 있었다면 그녀의 삶과 딸의 삶과 오스카의 삶은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너무 크게 들었다

책의 제목은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이것만 나는 오스카의 삶보다 벨리시아의 삶에 더 촛점이 맞춰진다. 그녀가 좀더 좀더 이랬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커서일까...

제목에 나오는 오스카는 사실 오타쿠 기질이 다분한, 삶이 그닥 적극적이지 못한 모습을 보여줬다.

삶에는 푸쿠만 있는것이 아니다 라고 말한다. 저주 푸쿠를 피할 수 있는 역주문, 집게손가락을 열심히 포개면서 내뱉는 한 단어 ‘사파’가 있다고

 

"운명이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세요?"

 

삶은 정해진 운명대로 가는것일까? 어느 순간은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또 어느 순간은 다 자기 하기나름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도 한다 (요즘 읽는 책에 왜 운명에 대해 많이 등장하는지 ㅎㅎㅎ)

사실 정해진 운명인가..개척하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책을 읽을때마다 나 자신조차 헷갈리곤 한다. 이럴수도 혹은 저럴수도 있다는 생각에 흔들린다. 정말 알수없는 인생이 아닌가 ㅡㅡ;;

가족을 지키려고 했던 아벨리아와 사랑을 표현하지 못하는 벨리시아. 그들은 정해진 운명을 살았던 것일까, 아니면 정해진 운명에 나름대로 대항하며 살았던 것일까? 그 누구도 쉽게 이렇다 정의내릴수 없다

왜? 우리가 그 삶을 직접 살아보지 않은 까닭이다

어떤 어려움속에서도 희망을 끝을 놓지 않는것이 인간이다. 그래서 푸쿠가 판을 쳐도 사람은 살아남고, 살아가고 , 사랑하는 것이겠지

그래, 세상에 저주는 분명히 있다. 하지만 저주를 풀 힘또한 분명히 있는 것이다. 악이 있으면 선이 따라 오는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 가족에게 내려진 푸쿠에 대한 사파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이 오스카 와오에겐 사랑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사랑으로 죽어간 오스카....그의 삶이 놀라운가?

사실 잘 모르겠다.

그들의 살아온 삶이 아프거나 슬프기보단 그저 답답하게 느껴질 뿐이다.

 

나는 내 삶에 당당하게 맞서고 있는것일까? 아니면 순응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나는 제대로 된 나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인가.... (악...헷갈려 ㅜ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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