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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이야기/이미지난이야기

인어공주, 그 마지막 5분

by 카타리나39 2025. 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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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들린 작은 단도를 바라본다.

"꼭!"

다짐하듯 자신의 손에 칼을 쥐어주며 눈물짓던 언니들의 모습이 눈앞에서 아른거린다. 길었던 머리를, 항상 자랑스럽게 휘날리던 머리카락을 어린 동생을 위해 아낌없이 마녀에게 내주었던 언니들은 그래도 불안한지 몇번이나 몇번이나 다짐을 받고서야 돌아갔다.

언니들의 모습을 생각하며 살며시 왕자의 침실로 들어선다. 물론 성이였다면 엄중한 경비에 조금은 고민을 했겠지만 이상하게 왕자는 배에서만은 경비를 느슷하게 풀어놓곤 했다. 하긴 몇명쯤 지키고 서 있다고 해도 그걸 통과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내 노래는 그들을 잠들게 할수도 있고, 기뻐서 웃게 할수도 있으니 말이다. 왕자는 언제나 자신의 춤이 그를 행복하게 만든다고 했다. 그것은 그를 행복하게 만들고 싶은 자신의 마음이 밖으로 드러난 탓임을 그는 모른다. 

왕자는 다른 여자와 곤하게 잠들어 있다. 어여쁜 공주다. 그냥 어여쁘기만한 공주가 아니라 이 나라만큼이나 막강한 나라의 귀한 공주님이다. 나도, 내 나라에선 그랬거늘. 순간 자신의 처지가 서글프다.

"넌?...."

시선을 느꼈던가? 왕자가 눈을 떠서는 자신을 바라본다. 소리도 치지 않고 그저 내 얼굴을 슬프게, 아니 아프게 바라본다. 그러면서 곁에 누워있는 공주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상체를 일으켰다. 그 모습을 고개도 돌리지 않고 바라보고 있다. 그의 행동을 보고 망설이고, 망설이다 나온 말.

"알고....있었죠?"

오랜만에 나오는 목소리가 스스로에게도 낯설었다. 바다마녀도 그리 나쁜 사람은 아닌 모양이다. 이렇듯 마지막에 목소리를 잠깐 이라도 돌려준걸 보면. 처음듣는 자신의 목소리에 왕자는 놀란 표정을 짓다 내 질문의 뜻을 알았는지 고개를 살짝 숙여 잠들어 있는 공주를 바라본다. 어째서 질문을 자신이 했는데, 눈앞에 그 답을 바라고 서 있는것은 자신인데 그의 시선은 대답전 공주에게 향하는 것인가.

"미안하다"

그의 작은 목소리. 미안하다 한다. 미안하다고.

차라리 거짓이라도 몰랐다고 해주지. 나는 손에 들려있던 단도를 슬며시 치마뒤로 숨겼다. 그도 보았을테지.

"행복하세요! 부디....."

돌아서는 나를 그는 잡지 않는다. 아니 잡지 못한다. 모르겠다. 그가 자신을 잡지 못하는것인지 아니면 잡지 않는것인지. 하긴, 그게 중요한것은 아니다. 결론은 그가 자신을 잡지 않았다는 것. 그 마음이 뭐가 중요하겠는가.

유난히 시린 달빛이 눈에 들어온다. 떨어지지 않는 걸음을 옮겨 뱃머리로 향한다. 그리고 한동안 그렇게 멍하니 서 있었다.

"왜?."

여전히 단도를 들고 서 있는 자신을 언제 왔는지 언니들이 바라보며 묻는다. 왜 그를 죽이지 않았느냐고..왜 그랬냐고. 그 눈동자에 담긴 말은, 입밖으로 꺼내지 않아도 들려왔다. 

"언니들..미안해요! 하지만 그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였을꺼예요! 이곳에선 아무것도 아닌 나를 왕자비로 맞을수는 없잖아요. 출신도 모르고, 말도 못하는 나를 왕자비로 선택해 달라고 했던것 자체가 무리였다는건 언니들도 알죠?"

"하지만 너와 결혼하겠다고 했잖아?"

"그건 공주를 만나기 전이죠. 공주가 그분을 구한 것 또한 맞는 말이니까...그러니까..."

그는 어느순간부터 처음 바다속에서 그를 구한 사람이 나임을 알고 있었다. 나또한 그걸 느끼고 있었고 그가 딱 한번 더 청혼이 들어온 이웃나라 공주를 보고 온 후 결혼하자는 말에 행복해 했다. 여태 많은 청혼자들을 거절했기에 걱정조차 하지 않았다. 그래서 공주를 만나러 떠나는 그를 보며 미소지을수 있었다. 오만이었나? 그 딱 한번이 이런 결과를 가져올줄은 몰랐다. 하필이면 왜 그 공주였을까.

"여기서 왕자님을 죽이고 내가 살면 내 사랑을 부정하는거 같아서 그래서 더 못하겠어요. 난 그 사람 사랑했고, 그래서 내 모든걸 버려 그 사람 선택했어요. 결과가 이렇게 되었다고 해도 후회하고 싶지는 않아요! "

나는 차마 언니들을 마주 바라볼수가 없었다. 태양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잠시 왕자가 있는 선실쪽을 바라보다 바다를 향했다. 바다는 언제나 따스하다. 엄마품처럼 그렇게. 그런데 오늘의 바다는 왜이리 시릴까? 왜이리 차갑게만 보일까. 

행복하기를!!!!

마음속으로 기원하며 따스한 바다로 몸을 던졌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신을 위해 저리 애써준 언니들이 아닌 그를 생각하는 자신이 못내 바보같이 느껴졌지만 자신조차 어쩌지 못하는 마음이다.

나는 다음에 다시 태어날수 있을까? 혹시 그럴수 있다면 이렇게 아픈 사랑은 하지 않기를.

그날의 바다위로 아름다운 물거품이 바람에 흩날렸고 서글픈 누군가의 노래소리가 오래도록 바다위를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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