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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이야기/이미지난이야기

종소리, 쓸쓸함의 냄새가 난다

by 카타리나39 2011. 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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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소리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 한국대표소설
지은이 신경숙 (문학동네, 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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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작가의 책을 읽었던 것이 이상문학상수상집에 실렸던 단편 [부석사]였다. 

부석사라는 글에 부석사는 당최 나오지도 않고, 부석사 가는길을 헤매는 남여가 등장했다. 그래서인지 가끔 제목이 부석사인지, 부석사가는길이였는지가 헷갈리곤 했을만큼 별 관심이 가지 않는 작가라고 할수 있다. 다만 그들이 종국엔 부석사에 가길 바라는 마음은 있었다.

누구의 추천이였을까... 이 종소리라는 그녀의 단편집을 집어들게 된것은...분명 자의는 아니였고 그당시는 필요에 의해 추천을 받아 구입해 놓고도 나는 꽤 오랜 시간을 이 책을 들기를 망설였었다. 언제나 다른 소설들에 밀려 자꾸 책장의 한구석만을 장식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종소리]라는 제목이 시선을 잡아 -정말 왜인지는 모른다- 펼쳐들게 되었다.

음식자체를 거부하는 남편을 바라보는 아내의 얘기인 종소리, 어느날 갑자기 집안에 나타난 유령에게 밥을 차려주는 여자의 우물을 들여다보며, 다방 한가운데 악어를 키우며 죽을날을 기다리는 여자가 등장하는 물속의 사원, 이른 나이에 세상을 등진 작가 채영주에 대한 헌사라는 혼자 간 사람, 술을 마시는 아버지를 바라보는 딸의 얘기인 달의 물, 그리고 부석사를 찾아가는 남여가 등장하는 부석사  이렇게 총 6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이 여섯편의 얘기엔 각기 다른 모습의 여자들이 등장한다. 서로가 처해진 환경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글을 읽는 내내 비슷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외로움과 고독의 냄새가 폴폴 날리고 있다 느껴지는것은 나만의 착각이였을까?

종소리를 제외하곤 등장하는 모든 이들의 거주하는곳은 집으로 묘사되는곳이 아닌 단순한 방이다. 그들에겐 방이 휴식처가 아닌 그저 하나의 공간으로만 등장한다. 철처히 혼자인 그들에게 방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물론 그 방조차 거부하는 여자도 있다. 그렇다고 집이 등장하는 종소리에선 따뜻함을 느낄수 있었나? 그건 아니다. 집이 등장하고 있어도 부부에겐 각자의 방이 따로 마련되어 있는듯 서로의 생각안에서만 머물고 소통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외로움에 빠진 그들. 대부분 글들이 정확한 끝맺음을 주지 않고 외롭고 고독에 찬 그들이 조금씩 변화를 겪을듯 하면서 사라져버린다. 과연 그들은 자신만의 방에서 나와 누군가와 함께 걷는 길을 선택할수 있을까 모르겠다. 물론 우물을 들여다보며는 조금 다른 느낌을 갖게 하기도 했지만...

이렇게 끝이 명확하지 않은 글을 읽는걸 싫어한다. 다 읽고 나서는 뭔가 부족하고 찜찜한 기분을 떨치기가 쉽지 않다. 특히나 불행해 보이는 결말을 보면 그렇다. 결론은 독자의 몫이라해도 왠지 그 찜찜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아마 어쩌면 부석사를 읽으면서부터 이런 기분을 알았기에 이 책을 들기가 어려웠는지도 모르겠다.

하긴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맺음을 한다고해서 그것이 끝일리는 만무하다. 그러니 어쩌면 글에서의 완벽한 끝이란 있을수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아니 글에서뿐아니라 인생에서도 그렇지 않을까? 하지만 나는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나는 글을 무척이나 선호한다. 그저 그후에 어떤일이 있다해도 내가 본 마지막이 행복하였다라는 것에 만족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덮은후엔 만족감을 느낄수는 없었다. 그들의 팍팍한 삶의 모습에, 외롭고 허전한 그래서 한곳이 비어버린듯한 그 모습때문에...

어딘가 길을 걷다 들려오는 종소리에 발걸음을 옮겼지만 끝내 그 종을 보지 못하고 돌아서야 하는 기분. 뒤를 흘깃 돌아봐도 역시나 종은 보이지 않고 영원히 끝나지 않을 종소리를 듣는 기분이다. 어쩌면 그녀의 글은 흐릿한 기억으로 존재하다 부석사라는 글에서 끝내 부석사를 찾아내지 못했듯 그녀가 전해주고자 하는 뭔가를 잡지 못한채 사라져버릴지도 모르겠다.

 

* 사실 단편 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제 취향의 책은 아니였습니다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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