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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이야기/이미지난이야기

왕비열전, 역사속 그녀들을 만나다

by 카타리나39 2011. 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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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가 500년을 이어오면서 배출한 왕은 27명이라고 한다. 그런데 왕비는 그보다 많은 44명이였다니 그 숫자차이가...또 이 숫자엔 당연히 후궁들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러니 한명의 왕에게 몇명의 여자가 있었던건지 알수 있는 방법은 없들듯도 하다.

왕릉일람표상에 나타난걸로 확인해보면 최고는 19대왕인 숙종이였던듯하다. 숙종에겐 인현왕후 민씨, 인원왕후 김씨, 인경왕후 김씨, 숙빈 최씨, 희빈 장씨등이 기록되어 있다. 물론 4대 세종또한 많은 후궁이 있었던 인물로 유명하긴 하다. 그래도 왕비는 딱 한명 소헌왕후 심씨뿐이였던것은 그녀의 수명탓이였을까?

왕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데 그 부인인 왕비는 사실 많이 알려진것이 없는것이 사실이니 왕비가 아닌 후궁이야 말할것도 없을것이다. 간혹 장희빈처럼 왕비의 사망후에 새왕비로 책봉되는 경우도 있긴했지만 대부분 아주 어린 소녀들을 다시 왕비로 들이는 경우가 더 많은것이 조선시대 였다. 그래서 자식보다 혹은 손자와 별 차이가 없는 할머니가 생기기도 한다.

왕비열전:새롭게꾸민
카테고리 시/에세이 > 인물/자전적에세이 > 역사인물
지은이 임중웅 (선영사, 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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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끔 이 책을 들춰보곤 한다.

특히나 조선역사 드라마가 시작되면 어김없이 책을 꺼내 들고 그때의 왕비가 누구였는지, 후궁은 누가 있었는지 그들의 관계는 어떠했는지를 살펴보곤 한다. 물론 드라마는 실제의 역사와 많은 부분이 다르기때문에 책과 일치할수는 없지만 사전지식을 얻는셈 치고 보는 편이다.

드라마 이산을 시작했을때도 들춰보았으나 이 책에선 효의왕후에 대해서는 나름 기록이 되어 있으나 정작 문효세자를 낳았던, 드라마속에선 효의왕후보다 더 비중있게 다룬 선빈(드라마에선 의빈이였던가?) 성씨에 대한 기록은 몇줄밖에 없었다.

엉뚱하게도 윤씨의 나인 창녕 성씨에게 마음이 끌려 1782년 9월 성씨가 왕자를 낳았다....이듬해 2월 성씨를 성빈으로 승격시켰다. 그러나 3세때 세자로 책봉한 문효세자가 1786년 5월 5세에 요절하자 그 충격으로 선빈 성씨는 얼마 후 세상을 떠났다. 즉 세번째 후궁이다 (p324)

이렇게 기록된것이 그녀에 대한 기록의 전부였다. 하긴 이건 왕비열전이니 왕비가 아닌 이들을 자세히 다룰 필요야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정조의 정비인 효의왕후가 후사가 없음으로 인해 죄인처럼 지낼을 것이란것은 짐작할수 있었지만 상상임신까지 했었다는것은 이책을 통해 처음으로 알았다. 정조와 유난히 부부의 정이 좋았다는 효의왕후도 후사때문에 참 힘겨운 날들을 보낼수 밖에 없었던 조선시대는 역시나 남자들을 위한 시대였는지도 모르겠다.

성종의 바람기에 폐비가 된 윤씨나 그녀의 아들인 연산군의 패륜 폭정에 노심초사할수 밖에 없었던 신씨, 중종 즉위로 남편과 생이별을 하고 치마바위 그림움으로 유명한 신씨, 고아라는 이유로 왕비가 되어 시아버지와 정권 다툼까지 벌인 민씨...등등...

우리가 한번쯤은 들었던 그녀들의 이야기가 들려온다. 우린 이런 삶을 살았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화려하게(?) 보일수도 있는 한 나라의 중전자리에서도 외롭고 쓸쓸했던 이들이 많았던 왕비들의 삶을 보면서 그래도 그나마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은것을 감사하게 생각해야하는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가끔식은 하게 된다.

 

* 왕비들의 자료가 부족하다보니 어떤책을 읽어도 비슷비슷한 내용이란 생각이 들곤하는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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