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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이야기/이미지난이야기

왕이 못 된 세자들, 권력의 그늘에서 사라지다

by 카타리나39 2011. 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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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못된세자들
카테고리 역사/문화 > 한국사 > 조선시대 > 조선왕조사
지은이 함규진 (김영사,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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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로맨스소설을 그것도 역사로맨스소설을 엄청나게 좋아하기에 세자, 왕들에 대한 환상이있는것이 사실이다. 소설속의 세자들은 문무를 겸비했으면 자유로운 성격에 상처입은 영혼(?)들이며 미래에 대한 고민과 외적으로도 건강하고 잘생긴(이게 중요할지도 ㅋㅋ) 사람들이였다. 하지만 .. 현실은? 절대~ 그렇지 않았음은 이미 알고 있다 ㅜㅜ

조선 왕조의 세자는 모두 27명이였고 그 중 왕이 된 세자는 15명이라고 한다. 12명의 세자는 보장되었던 왕의 자리에 오르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던 것이다.

왕조시대 세자라는 자리는 권력의 2인자요 미래 권력을 이어받을 사람이다. 그렇기에 태어나면서부터 엄청난 기대를 받아야했고, 그에 따른 책임감으로 어깨가 무거울수밖에 없었을것이다. 어렸을때부터 왕의 재목으로 키워지고 받들어졌던 그들은 어째서 왕의 자리에 앉지 못하고 사라져야했을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왕이 못된 세자는 양녕대군과 사도세자 그리고 소현세자를 들수 있다. 학창시절에 아름답게 포장되어 배웠던 충녕대군을 왕으로 앉히기 위해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났다던 양녕대군의 미담은 그저 미담일뿐이라는것을 어느순간 알게 되었다. 형제들을 죽여서라도 앉고 싶어하는 권력의 핵심, 어렸을때부터 자신의 자리다 알고 자라온 이가 그리 쉽게 자리를 내어줄수 있었다는 미담을 만들어낸것은 아마도 세종대왕때문이였으리라...

그렇게 이긴자에 의한 기록으로 남는 역사속에 기록된 왕이 못된 세자들의 이야기는 어쩌면 우리가 모르는 진실들이 숨겨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야사가 더 정확하기도 하다는 말이 있지만 그또한 100% 맞다라고는 얘기할수 없다. 정사가 이긴자의 기록이라면 야사는 그 이면의 얘기인지라 또한 보는 시각이 다를수 밖에 없을 것이다.

정사와 야사의 일치하는 부분이 있다면 그게 정답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왕이 못된 세자들은 살해되기도 하고, 폐위되기도 하였으며 병으로 죽은 경우도 있다. 세상에서 가장 귀하가 자랐을 그들이지만 권력의 2인자란 자리는 결코 행복할수만은 없었을 것이다. 견제세력이 있었고, 그들을 이용하려는 세력이 있었던 세자의 자리...세자의 자리는 지금 고3 수험생들보다 더 힘겨운 공부속에서 지내야만 했다.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아니 이미 뱃속에 있을때부터 그들은 왕재로써의 교육을 받는다. 하루 일정이 빡빡하리만치 한치의 빈틈도 없는 생활을 해야했던 그들이다. 그런걸 보면 꼭 세자라고 해서 좋을건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사춘기쯤이되면 세자들의 방황도 심해지곤 했던 모양이다. 그것이 겉으로 드러나면 양녕대군처럼 되는것이다 ㅡㅡ;;

세자들의 힘겨움이 비단 남에 의해서만 일어나는것은 아니다. 외롭고 힘겨운 궁 생활속에 의지할수 있는이가 없는 세자들, 아버지와의 사이가 일반 가정과 같이 돈독했다면 모르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았었고, 자신의 아들을 대를 이을 후계자가 아닌 자신의 권력 경쟁자로 의식한 아버지들도 분명 있었기때문이다.

병으로 사망한 세자들이야 그렇다치지만 아마 세자들이 병치레가 많았던 이유는 과중한 부담감과 스트레스때문일지도 모른다. 알게 모르게 그들은 주위 사람들에 의해 스트레스를 받았다.

정조의 아버지인 사도세자는 영조의 거짓 양위 소동으로 인해 5살때 처음 석고대죄를 청하게 된다. 겨우 다섯살때부터 사도세자는 영문도 모른채 아버지가 벌이는 양위소동이 있을때마다 석고대죄를 해야만 했다 (이런 양위소동은 생각해보면 매번 왕들이 자신의 권력을 확인하기 위해 써먹는 수단이였다)

청에 볼모로 끌려갔던 소현세자는 아버지 인조의 냉대속에 7년의 인질 생활을 끝내고 돌아온 후 이개월만에 죽음에 이르게 된다. 그에게 힘겨웠던 청나라 생활보다 변해버린 자신의 조국이 더 낯설고 힘겨웠을 것이다. 자신뿐 아니라 세자빈과 아들 둘도 죽음에 이르렀으니 소현세자의 삶도 참 서글프기만 하다.

사도세자와 소현세자는 아버지에 의해 왕의 꿈이 좌절된 케이스라고 볼수도 있다. 물론 양녕대군또한 폐위가 되었으니 그또한 아버지의 뜻일것이다. 하지만 그는 살아 남았으니 그들보다는 나은 삶이였다 말해야 할런지도 모른다. 본인에게야 어떨지 모르지만...

그럼 흔히 폭군이라고 일컬어지는 연산군과 광해군에게 아들이 있었던가?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들에게도 아들이 있었다는것을...그들은 세자가 되었지만 아버지가 폐위됨과 동시에 자신의 뜻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이 그저 그들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폐위가 되어버린 비운의 세자들이였다.

그러고보면 영조는 어린 세손을 꽤 아꼈던 것이 사실인듯하다. 사도세자가 폐위되고 사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세손을 폐위시키지 않고 왕위에 올린것을 보니 말이다. 만약 그렇지 못했다면 우리는 정조대왕을 잃었을텐데...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할지도 모르겠다.

여기 또 한명 비운의 세자가 있었다. 조선 마지막 왕세자 이은...하지만 역사에도 기록되어 지지 못하는 왕세자였다. 27대 순종을 끝으로 나라가 망했으니 어쩔수 없는 노릇이였을테지만 어쨌든 왕자로 태어난 그는 그렇게 인정도 못받고 일본에 의해 이친왕이란 칭호만을 허락받은 존재였었다. 뭐 가엾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는 않는다 ㅡㅡ;;

권력이 크고 높아질수록 그 그늘또한 크고 깊어진다. 그 안에서 사라져야했던것은 비단 왕세자만은 아닐것이다. 어느 시대건 권력앞에선 비정해지는 인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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